자 차였으니 회고록을 쓰자


명시적으로 차이진 않았다 명시적으로는... 왜냐하면 내가 굳이 묻지 않았기 때문이지. 난 거절이라는 답변을 별로 듣고 싶지가 않음. 잘 모르겠어-라는 유보적 거절도 듣고 싶지가 않음. 거절을 거절한다 이런 거임. 뭐 일단 그쪽에서 날 엄청나게 좋아하면 그냥 알아서 연락을 하게된다는 걸 잘 알고 있음.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게 언젠가의 월요일인데 월요일 밤에 그 사람은 바로 잘 자라는 연락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굿모닝 연락을 하고 점심에 곧장 일요일에 시간 되냐고 질문함. 나는 그 때 선약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고 그러자 그 사람은 수요일에 볼 수 있냐고 했음. 이 땐 얘가 날 무진장 맘에 들어하는 게 느껴졌음. 그러다가 이제 내가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선물을 준 다음에는 연락이 좀 오래 끊....김..... 원래 만난 날 밤이나 만난 다음날 아침에는 항상 연락이 왔는데 좀 오랫동안 안 옴. 근데 차마 내가 연락할 수는 없었음ㅠㅠ 별로 맘에 안 드는 상대가 잘 연락하면 더 싫어지잖아... 그러다가 결국 으- 하고 막 차단하게 되잖아... 나는 그래....ㅠㅠ 그래서 그냥 혼자 속으로 앓다가 혼자 잘 놀다가하며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SNS에 근황이나 업데이트하면서 지냈음. 그러다가 연락이 또 왔는데 이번엔 좀 번개처럼 연락이 옴. 시간 계산해보니 안 될 것 같아서 아쉽지만 오늘은 안 될 것 같다고 함. 다음날인 월요일에 연락이 오후 네 시 경에 옴. 밤에 시간되냐고. 그리고 난 그 날 밤에 시간을 내려니 좀 피곤하기도 하고 신경쓸 것도 있고 그랬음. 그래서 오늘 안 될 것 같다고 하니까 바로 '이제 안 보려고?'라는 질문이 옴. 그래서 또 이 멍충한 나새끼는 '아니 난 보고싶은데'라고 답하고 이번주 중에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화요일이나 수요일이 괜찮대. 그래서 화요일에 보자고 했는데 몇 시간 뒤에 그 날 갑자기 회의가 생겼다고 일정을 다시 잡자네. 그래서 내가 시간 될 때 알려달라고 했고.... 연락은 오지 않았음. 응 지금 이 시간까지 안 왔음. 그래서 난 아, 앞으로는 얘가 날 찾지 않겠구나- 이런 생각이고 그리하여 맘정리용 포스팅을 이렇게 쓴다. 사실 주말동안 사람 만나는 약속이 너무 많았고, 팽팽 놀았고, 맘에 쏙 드는 서프라이즈 선물도 받았고, 희한하게 요새 나 잘 챙겨주는 사람들이 부쩍 많았고, 수다도 잘 떨었고, 뭣보다 갑작스레 새로운 스케줄이 발생해버려서 맘 자체가 엄청 괴롭지는 않음. 근데 좀 헛헛함.

뭐 여튼 맘정리를 해야죠. 얘의 뭐가 좋았냐면-


1. 얘가 날 처음 만났을 때 '집에 보내기 싫다, 궁금한 게 많다, 내 욕심이지만 밤새 네 얘기를 듣고 싶다' 이런 말을 했음. 나는 '음... 오빠랑은 밤새 같이 있을 수는 있겠다' 이 말을 하면서 가방을 챙기고 나가자고 함. 그리고 다음번에 봤을 때에도 얘가 똑같은 취지로 말을 하다가 부모님이랑 같이 사니까 안 되겠지- 이런 말을 했고 난 그냥 가만히 있었음. 사실 난 부모랑 안 살지만 굳이 그 얘기를 남자 앞에서 하고 싶지는 않음. 트레이너한테도 절대 말 안 함. 왜냐하면 나 대학 다닐 때 아주 잠깐 자취했던 적이 있는데 별 생각 없이 그 얘기를 했더니 안 친한 놈들이 막 밤마다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대서 막 아홉시에 잠든 척 하고 그랬음. 여튼 그러다가 얘가 다음번에 만났을 때 '근데 집에 늦게 들어갈 때마다 부모님한테 뭐라고 해?'라고 물음. 그 질문을 들으면서 나는 얘가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걸까 얘 자체가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걸까 생각을 하다가 걍 사실대로 '나 사실 혼자 살아'라고 말함. 그랬더니 얘가 했던 말이 뭐냐면-

"아. 그래서 그 때 나랑 밤새 같이 있을 수 있겠다고 했던 거구나."였음.

첫째로, '왜'라는 질문을 갖는 인간이란 점이 일단 좋아보였음. 나에 대한 관심이 아니더라도, 그냥 세계에 호기심을 갖는다는 특성 자체를 난 긍정적으로 평가함. 의문점을 계속 지니다가 답을 얻고 속시원해하는 모습이 좋아보였음. 내가 생각하는 '좋은 인간'이란 인지능력이 좋은 인간임.

둘째로, 상황이 바뀌자 '너 그러면 나랑 밤새 있으면 안 될까'라고 절대 말하지 않았던 게 좋음. 그러니까 이 사람은 애초에 나랑 별로 밤새 있고 싶지는 않았고ㅋㅋㅋㅋ 단지 여운을 남기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제조하기 위해서 그 말을 했던 거임. 매우 전략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음. 절대 예스-라는 답변이 오지 않을 상황이란 걸 알기에 굳이 그렇게 원하지 않는 제안을 하고, 그런 식으로 '원하는 거절'을 받아낸다. 그리고 '원하는 분위기'도 얻어낸다.

셋째로, 더 적극적인 방어전략- 하지만 너무나 세련된 거절을 취할 줄 안다는 것이 좋음. 얘 내가 갑자기 솔직하게 혼자 산다고 말하니까(플러스 선물까지 주니까) 어라라- 내가 '오늘은 자고 갈게'라고 할까봐 몹시 두려웠나봄ㅋㅋㅋㅋㅋㅋ(나 그런 캐릭터 아니야.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해도 귀찮은 건 못 한다고요.... 나의 모토: 사랑합니다 하지만 귀찮습니다 이거나 받으세요 나보고 어떡하라고요) 얘가 갑자기 쌩뚱맞게 자기가 친구들이랑 어디 놀러가서 자면 코를 되게 심하게 곤다는 말을 함. 난 얘 화법이랑 성격을 대충 아니까 듣자마자 와우- 역시 매우 우회적인 거절을 잘 하는구나- 하고 느꼈음. 늘 우아하고 신사적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감탄하고 존경할 정도였음. 얘는 거절을 당하기 위해 본인에게 거절사유를 만들고는 마치 내가 그를 거절하는듯한 착각할 수 있을 기회를 준 거임. 사실 얘는 항상 내 선택권을 중시했음. 말할 때에도 '혹시', '안 될까', '해줄 수 있어?' 이런 표현을 몹시 많이 씀. 엄밀히 말하면 답은 정해져있음. 그가 유도하는 선택지가 애초에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형식 자체는 내가 선택하는 것임. 쉽게 표현하자면 얘가 원하는 답은 내가 그냥 집에 가는 거임. 근데 그 답이 도출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프레임을 바꿈. '자고갈까 아니면 그냥 갈까'라는 선택지 대신에 '나는 너의 시끄러운 코골이를 감내할 정도로 널 좋아해-라고 말할까 아니면 그냥 갈까'라는 선택지를 제시함. 당연히 나는 '너의 시끄러운 코골이를 감내할 정도로 널 좋아해'라고 말하는 게 '자고 갈까'라고 말하는 것보다 몹시 어려움. 그리고 그 정도로까지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 좀 이상하잖아... 아니 나 진짜 걔 좋아하긴 했는데 솔직히 같이 자고 가는 건 싫어 싫다구ㅋㅋㅋㅋㅋ 록패드와 클라리소닉과 팩과 다음날의 팬티가 없는 곳에서 자기는 뭘 자냐구. 여튼 걔 그리고 뭐 나랑 밤새고 싶다면서 뭔 코골이 얘기야. 그냥 거절을 매우 듣기 좋게 잘하는 사람이란 건 알겠음. 그리고 그 '듣기 좋음'은 '따뜻함'이 아니라 '계산됨'에 있어서 더 좋다고 생각함.


2. 얘랑 돈과 일 얘기를 했는데, 얘 말을 들으며 처음으로 했던 생각이 음, 얘는 정말이지 협상을 잘하는 사람이군- 이었음. 협상도 결국 거절의 일부라고 생각함. 상대의 주장을 어느 정도로 인용하고 어디부터는 거절할지를 정하는 건데, 그걸 아주 잘 설정하고 좋은 결과를 내는 게 눈에 보였음... 1에 주절주절 쓴 얘기가 강도(intensity)면에서 내게 큰 울림을 줬다면 시기적으로 가장 이르게 호감을 가졌던 건 이 때로 기억.


3. 목소리가 하이톤임.


4. 다른 사람들과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항상 그 사람들의 성별이 남자라는 걸 은근히 밝힘. '걔의 여자친구가', '걔의 부인이' 이런 식으로. 애초에 귀찮을 일을 안 만드는 사람임-을 어필하는 느낌이랄까.


5. 하얌.


6. 어깨가 넓음.


7. 가슴이 봉긋함. 근육인데 적당히 나옴. 햐 남자는 가슴이 커야지ㅎ_ㅎ?


8. 안경을 뺐다가 꼈다가 함.


9. 샤워한 다음에 나 맞이할 때에도 젤을 머리에 바르고 있음.


10. 예전에 쓴 글 중에 흰글씨로 쓴 부분.... -_- 이걸 또 여기에 썼다가는 이글루스 운영인이 제지하러 옴. 근데 이 부분만큼은 얘가 진짜 최고라고요. 말랑말랑....


11. 귀가 뾰족함.


12. 직모임. 남자는 역시 청순한 검은 생머리죠ㅎ_ㅎ.... 나 남자로 태어났으면 좀 많이 크리피한 인간이었을듯.


13. 내가 격한 단어를 쓸 때 절대 '말이 거칠어지고 있어', '너무 격하다', '너 뭐야' 이딴 말 절대 안 함. '너 정말 재밌다'고 말하고 눈웃음지음.


14. 좋은 조언을 많이 해줌. 쓸데없는 조언 말고 정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하는 조언.


15. 말을 마칠 때 '내가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했네'라고 하고 배시시 웃음.


16. 섹스 시 선호하는 기법-_-?이 일치함. 시행착오 없었고 둘 다 지극히 평범한 것만 도전하고 괜히 엄한 짓 안함.


17. '키 큰 여자, 좋아. 잘 배운 여자, 좋아' 난 이 말을 정말 못 잊겠다. 그 말투가 잊히지가 않음. 그리고 정확하게 선호되는 느낌이라 좋았음. 엄밀히 말하면 난 잘 배웠다기보다는 잘 배워보이는 거지만-_-;


18. 난감해할 때의 표정이 귀여움.


19. "키스를 하고 싶은데 양치를 해야할 것 같아...(또 엄청 온순한 말투)"라면서 양치하러 가던 모습. 그리고 어느날은 내가 어물쩍 키스하면서 좀 불편해하니까 "양치를 해야 되는 거야?"라고 물음. 그 때도 걘 웃고 있었지.


20. 나랑 여행가고 싶다면서 내가 '어디?'라고 하니까 '너가 가고 싶은 데'라고 한 거.


21.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선 절대 명확한 답을 해주지 않음.


22. '오빠가-' 이 말투 안 씀. 이 말투를 딱 한 번 썼던 건 '오빠가아- 씻겨어-줄까아-?'였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굴에 장난기가 한가득. 내가 히이이이이이익 극혀어어어어어엄 이러면서 후다닥 화장실로 도망갈 것 알고서 친 장난.


23. 그냥 <내가 좋아하는 얼굴>이란 게 있는데 그 카테고리 안에 들어감. 나는야 얼굴형 날렵하고 눈썹 튀어나오고 코 높고 사납게 생긴 얼굴빠...이며 이런 얼굴은 직모가 몹시 잘 어울림.




자잘한 것들 쓰다가는 끝이 없겠네. 여기서 줄여야지. 좋은 감정을 경험하고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함. 그리고 내가 그 진득하게 오래된 연애랄 것도 없는 연애를 와장창 말아먹고나서 얘 덕택에 안 힘들었음. 고난을 극복할 수단으로 나도 모르게 얘를 택한 건지, 아니면 얘를 알게 됨으로써 자연스레 행복해진 건지 나야 모르지만 여튼 좋음. 얘를 보며 좀 구체적인 동기부여 경험을 가진 적도 있고.

좋았다, 좋다, 좋을 것이다. 다른 말들은 다 쓸 데 없는 말들이겠지.

덧글

  • 2017/03/19 23:58 # 비공개

    비공개 덧글입니다.
  • 2017/03/20 20:55 # 비공개

    비공개 답글입니다.
  • 2017/03/19 23:39 # 비공개

    비공개 덧글입니다.
  • 2017/03/20 20:58 # 비공개

    비공개 답글입니다.
  • 초코홀릭 2017/03/20 20:27 #

    헉 그 말랑말랑 부분 넘나 유익(?)했는데!!!! 운영자가 제지하러 왔었나요???? 이럴수가 그정도 수위에ㅜㅜㅜㅜㅜ
  • 희비 2017/03/20 21:00 #

    밸리에서 내리든가 그 흰부분을 삭제하라고 하더군요ㅋㅋㅋㅋ
  • 2017/03/20 21:39 # 비공개

    비공개 덧글입니다.
  • 2017/03/20 23:00 # 비공개

    비공개 덧글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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